[시론] 저출산이라는 시한폭탄

입력 2023-09-06 17:54   수정 2023-09-07 00:37

대학은 살아있었다. 저출산 현상과 문화의 관계를 조명한 필자의 칼럼이 게재된 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가 달아올랐다. 고무적인 일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전대미문이자 세계 최악인 출산율은 한국이 직면한 최대 현안이다. 이론과 데이터에 근거한 심층적인 논의와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 저출산은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정초하고 맨슈어 올슨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체계화한 뒤 많은 학자가 정교화하고 연구한 집단행동 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올슨은 합리적 개인들은 소속 집단의 공동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기에 무임승차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저출산 사태는 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건복지부의 2006년 여론조사에서 이미 전체 국민의 78.5%는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답한 이는 극히 적었다. “아이를 낳겠다”고 한 미혼 남녀 및 자녀가 없는 기혼자는 겨우 43%에 머물렀다. 이론은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제재가 없었다. 무임승차 행위를 막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벌칙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산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제도적 규제 장치는 전무했다. 2010년 ‘출산기피 부담금’이 제안됐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창양 당시 KAIST 교수의 아이디어는 기성세대의 ‘꼰대 짓’으로 취급됐다. ‘싱글세’ 도입도 전망이 밝지 않다. 비혼, 비출산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제는 유지한 채 신혼부부에 대한 증여 공제를 늘리고 출산 보육 비용의 비과세 한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둘째, 실효성 있는 유인책이 부족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공익을 도모하게 하려면 효과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육아 휴직, 보육 지원, 아동수당 등 부모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형편없이 적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저출산 대책은 거품투성이였다. 이름만 그럴싸한 ‘꼼수 예산’이 많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직접 지원금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한국보다 출산율이 두 배나 높은 프랑스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셋째, 문화 육성에 소홀했다. 공익 대신 사익만 추구하는 현상을 방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공동체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폴 몰랜드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자가 저출산 극복의 해답으로 지목한 ‘출산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가치관 전파’를 게을리했다. 공중파 TV에선 대다수 시청자에게 거리감과 위화감을 주는 육아 예능이 판쳤다. SNS는 남녀 간 증오와 불신을 키우는 악담과 가짜 뉴스로 가득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회의가 독버섯처럼 퍼져갔다.

저출산은 미셸 부커 전 세계정책연구소 소장이 경고한 ‘회색 코뿔소’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외면하다가 재앙을 불러올 시한폭탄이다. 이미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2021년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군은 병력 규모 축소에 착수했다.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22대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인들이 기존 정책의 성찰과 혁신을 통해 출산율 반등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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